밀양인권침해보도자료(5)_20131010.hwp


수 신

각 언론사 정치부, 사회부

발 신

인권단체

담 당

박진 다산인권센터 활동가 017-268-0136 humanrights.myang@gmail.com

현장팀 민선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 011-9915-5799

제 목

밀양인권상황에 대한 인권단체 입장의 건(5)

날 짜

2013. 10. 10()

보도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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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8~9. 밀양인권상황에 대한 인권단체의견(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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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주민들에 대한 인권침해 중단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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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인권과 평화의 인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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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밀양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관련한 속보는 밀양 765kV 송전탑 반대 대책위원회”(약칭 대책위)로부터 받고 있으시리라 생각하고 인권단체는 밀양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인권의 시각에서 짚어 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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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인권단체들은 현장에 인권활동가들을 파견, 주민들 곁에서 인권침해 감시활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108~9일엔 평밭마을(127번 송전탑)과 상동면 여수마을(126번 송전탑) 및 도곡리(109번 송전탑), 단장면 바드리마을 및 평리마을(84,89번 송전탑), 금곡헬기장 등에서 활동했습니다. 긴급상황이 벌어지는 마을에 대한 현장활동은 당분간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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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108~9일 상황에 대한 현장 활동가들의 약식보고와 의견을 다음과 같이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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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인권침해감시활동에 함께 했던 활동가들이 현 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릴레이로 써나가려 합니다. 활동가들의 이야기는 약식보고서와 함께 첨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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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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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 1: 밀양 2013108~9일 상황에 대한 인권단체들의 약식보고서

첨부 2: [활동이야기] 침묵하지맙시다. (신훈민, 진보네트워크센터 활동가 / 변호사)

첨부 3: [활동이야기2] 우리가 싸우는진짜이유를 아시나요(아요, 빈곤과 차별에 저항하는 인권운동연대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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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 1]

밀양 201310월 8~9일 상황에 대한 인권단체들의 약식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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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9일엔 평밭마을(127번 송전탑)과 상동면 여수마을(126번 송전탑) 및 도곡리(109번 송전탑), 단장면 바드리마을 및 평리마을(84,89번 송전탑), 금곡헬기장 등에서 활동했습니다. 긴급상황이 벌어지는 마을에 대한 현장활동은 당분간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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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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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08()

12:00 평밭마을(127번 송전탑) 방문

14:00 상동면 여수마을(126번 송전탑) 농성현장 방문 및 경찰측 면담

17:00 단장면 바드리(84,89번 송전탑) 농성현장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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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109()

1

10:30 여수마을, 주민과 2일 연행 상황 관련 인터뷰

14:00 상동면 여수마을(126번 송전탑) 농성현장 방문 및 주민 인터뷰

16:30 상동면 도곡리(109번 송전탑) 농성현장 방문

2

12:00 금곡 헬기장 방문

13:00 단장면 평리 농성현장 방문

15:00 단장면 바드리(84,49번 송전탑) 농성현장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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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문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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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태풍으로 인해 방문한 바드리 현장을 제외하고 특기할만한 충돌 상황은 없었다.

9일 방문한 단장면 바드리 현장에서는 2명의 시민이 현장 길목으로 들어가려던 중 경찰에게 제지 당하고 몸싸움 후 들려 나왔다.

8일과 9일 방문한 모든 현장에서 광범위하게 통행제한이 이루어 지고 있음을 확인했다. 일부 경찰 및 전의경의 경우 식별이 불가했으며, 사복을 입은 의경 및 경찰들의 불법채증도 여전히 이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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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의적 선택적 이동의 자유 제한과 집회 및 시위의 자유 권리 제한 우려

-방문한 여수마을, 바드리, 도곡리, 평리 등에서 경찰이 선택적, 자의적으로 통행을 제한했다.

-8일 방문한 여수마을에서 경찰측은 통행제한에 대해 주민의 안전을 위한 경찰의 일반적 수권해석에 의한 것이고, 교행이 불가하기 때문에 안전상의 이유로 통행을 제한했다. ’공사방해금지 가처분 신청을 했다는 점도 덧붙여 설명했다.

-9일 방문한 도곡리에서 경찰측 통행제한의 근거를 물었으나 현장 책임자가 통행제한에 대해서 어떤 설명도 할 수 없다며 설명을 거부했고, “밀양 경찰서 상황실로 문의하라는 답변만 반복했다.

-9일 방문한 평리에서도 통행을 제한하면서 상부지시라는 점 이외 통행제한 근거를 밝히지 않았다.

-‘안전을 위한 일반적 수권해석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경찰력을 이용해 한전 공사 찬반 여부에 따라 자의적으로 선택적으로 통행을 제한하고 있다는 우려가 있다. 주민들은 기자들 마저도 한전측의 입장을 동의하느냐 아니냐의 여부에 따라 통행 제한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경찰이 명확한 행정적 법적 근거 없이 자의적으로 권한을 행사해 통행을 제한하고 이로 인해 집회와 표현의 자유에 관한 권리 행사를 제한할 우려가 있다.

-‘공사방해금지 가처분 인용결정을 무리하게 통행금지의 사유 중 하나로 설명한 것 역시 경찰력을 이용해 집회와 표현의 자유에 관한 권리행사를 가로막기 위해 이동의 자유를 제한해왔다는 우려를 증폭시킨다. 여수마을 경찰측을 만난 시점은 815시를 전후한 시점이었으며, 당시는 법원에서 공사방해금지 가처분 인용결정이 나기 이전이었는데도 해당 사유를 통행제한의 근거로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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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의 책무를 강화하기 위한 방안이 필요하다.

-현장에서 만난 주민들은 하루에도 20-30여 차례 경찰들로부터 체포하겠다”, “고발하겠다는 등의 말을 듣는다고 말했다.

-경찰과의 대치와 충돌이 이어지고, 공사가 강행되는 상황에서 경찰의 빈정거림과 채증, 체포와 고발 등의 위협은 주민들을 흥분, 자극시키고 때로는 충돌상황으로 이어진다.

-따라서, 집회시위에 배치된 경찰과 전의경이 주민들을 자극하거나, 흥분시켜 충돌상황으로 이어지는 것을 막고, 주민들의 안전을 보호하기 위해 책무성을 보장하는 방안이 필요하다.

-8-9일은 우천으로 인해 대부분이 우비를 입고 있었고, 우비 안의 제복에 식별표식이 있었다. 101일 이후 주민들과 대치하고 충돌하는 과정에서 경찰과 전의경이 조끼를 입은 경우 일부 표식확인이 불가능했다.

-9일 평리에서는 경찰이 셔츠 형태의 옷을 입고 있었으며 식별 가능한 표식이 부착되어 있지 않았다.

-채증을 하는 경찰의 경우 등산복을 입는 등 제복을 입지 않았으며 식별이 불가했다.

-시민들이 경찰관의 신분을 식별할 수가 없으면 경찰과 전경에게 포괄적 면책을 보장하는 효과를 낳고, 시위 중 인권침해에 대한 해당 경찰관의 책무성을 보장하기가 어려워진다.

-따라서 책무성을 보장하는 한 방법으로 경찰 책임자를 포함하여 일반경찰과 전의경 제복에 일정한 형태의 식별표식을 항상착용하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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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곡마을에서 경찰이 통행을 제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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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리 농성장 입구 길목에서부터 경찰이 통제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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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리마을에서 채증을 하고 있다. 누가 채증을 하고 있는지 식별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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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 2]

침묵하지 맙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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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훈민 (진보네트워크센터 활동가/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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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인권감시단으로 밀양에 다녀왔습니다. 정부에 대한 신뢰가 무너져 경찰과 주민이 얼굴을 붉히고 한전 직원은 주민을 피해서 도둑질 하듯이 공사를 진행하고 지역 공무원들은 주민이 아니라 정부의 입장만 대변하고 지역공동체가 무너져 주민과 주민이 반목합니다. 송전탑 건설은 작은 전쟁입니다. 공공의 이익을 위한 사업이 전쟁이 되어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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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 이후에 독일은 원자력발전소를 폐쇄를 선언했습니다. 현재 독일에서는 북쪽의 풍력발전소에서 남쪽으로 전기를 송전할 장래의 송전선로 건설이 이슈입니다. 독일 국토를 남북으로 가로지르겠지만, 우리와 같이 심각한 사회 혼란은 없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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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시민들은 이타적이고 우리나라 시민들은 이기적이어서 일까요? 아닙니다. 독일은 입지선정부터 시작하여 지중화선로, 보상, 향후 대책까지 송전선로 건설에 관련된 모든 부분에서 피해지역 주민들의 의사를 반영할 수 있는 민주적절차를 보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형식적인 주민 참여가 아니라 실질적인 주민 참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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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시민들은 매일 산에 오르며 공사를 막지 않아도, 경찰·용역·한전직원들에게 모욕을 당하거나 폭행을 당하지 않아도, 길거리에서 집회를 하지 않아도, 생명을 걸고 무기한 단식을 하지 않아도, 분신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 않아도 자신들의 의사를 민주적인 절차 안에서 효과적으로 반영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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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송전탑 분쟁의 원인은 피해지역 주민들에게 있지 않습니다. 여전히 개발독재 시절의 타성에 젖어 있어서 군사작전을 펼치듯이 공사를 진행하는 정부와 한전에게 송전탑 분쟁의 책임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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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압 송전선로가 설치되는 지역은 주로 지방, 특히 시골입니다. 서울 같은 대도시에서는 고압 송전선로를 보기가 힘듭니다. 시골에서 땅을 일구며 자식을 산업역군으로 키워 우리나라가 압축적인 경제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드신 분들이 송전탑 건설로 눈물을 흘리는 어르신들 입니다. 이들은 경제성장의 열매에서도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더 챙겨주지는 못할망정 더 이상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나라 이제 먹고 살만한 나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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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전선로가 지나가면 항공방제 지역에서 제외되기 때문에 밥농사를 못 짓게 된다는 어떤 할아버지의 탄원서를 읽었습니다. 저는 의심이 많습니다. 밤농사를 짓는 다른 지역의 상황을 확인했습니다. 약을 치지 않으면 벌레가 너무 많이 생겨서 상품성 있는 밤을 생산할 수 없다고 합니다. 연세가 많은 어르신들에게 항공방제만 선택지인데 송전선로 150미터 이내 지역은 항공방제 제한지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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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는 밤농사로 한해에 700~800만원 법니다. 수입의 전부입니다. 한전에서 보상금 154만원 나왔습니다. 단 한번만 주는 보상금입니다. 밤나무가 심어진 산은 이제 팔리지도 않습니다. 할아버지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수십년간 밤나무 심으며 일궈온 산을 껴안고 그냥 죽어야 하는 걸까요? 아니면 도시로 와서 뒷골목에서 쓰레기를 주으며 연명해야 하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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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농사 짓는 할아버지는 글을 모릅니다. 이웃의 도움을 받아 작성한 탄원서의 말미에서 할아버지는 나라의 도리에 대해서 말했습니다. 그러나 할아버지가 믿고 기대고 싶은 나라의 도리가 우리나라에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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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지역 주민들의 목소리에 귀를 닫아선 안 되며 듣고 침묵해서도 안 됩니다. 지금이라도 인간을 파괴하는 송전탑 공사를 멈추고 모든 가능성을 열어 놓고 원점에서 재검토하여야 합니다. 단순히 재검토 하는 것이 아니라 주민들이 논의의 장에 참여해야만 합니다. 외국의 사례를 참고하여 제도를 정비하고 광범위한 실태 조사를 진행하여 피해 지역 주민들의 고충과 공익이 조화를 이룰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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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다치는 사람이 없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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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 3]

우리가 싸우는 진짜이유를 아시나요?

-언론사 기자들에게 드리는 간곡한 부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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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요 (빈곤과 차별에 저항하는 인권운동연대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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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밀양에 처음 간 것은 작년 1월 이치우 어르신이 분신하고 나서 제1차 탈핵 희망버스 때입니다. 부끄럽지만 이치우 어르신이 돌아가시 전에는 밀양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당시 희망버스를 타고 전국에서 모인 사람들은 산 꼭대기 현장에 올라가서 참 많이 울었습니다. 이렇게 가파른 산 길을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 포대자루를 들고, 지팡이를 짚으며 오르는 할머니, 할아버지의 증언을 고개 숙이고 눈물로 들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당시 어린이책시민연대라는 곳에서 아이들의 손을 잡고 온 엄마들이 많았습니다. 온라인 까페에 밀양에서 벌어지는 일을 누가 올렸는데, ‘설마.. 그런 일이..’라는 마음으로 희망버스를 타고 왔다고 했습니다. 바로 앞에서 눈으로 보고, 직접 귀로 듣고 있지만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건설용역업체 직원들의 욕설과 폭력에 온 몸에 소름이 끼쳤습니다. 나무를 자르지 못하게 온 몸으로 나무를 끌어안고 울고 불면서 싸운 그 동안의 설움과 외로움을 아무도 몰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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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르신들은 너무나 기뻐하셨습니다. 머리가 희끗하신 한 할아버지는 스마트폰을 샀다고 했습니다. 김진숙인가 하는 여자가 트위터가 뭔가 하는 걸로 세상에 자신의 소식을 알렸다는 뉴스를 보고서, 그걸 하면 세상 사람들이 좀 알아줄까 하는 마음에 샀지만 사용하는 방법을 모른다고 했습니다. 벌목이 된 산비탈에 희망버스 참가자들은 나무를 심고 또 울었습니다. 이 나무를 지키려고 어르신들은 또 얼마나 힘들게 싸워야 할까를 생각하니 도무지 돌아가는 발걸음이 떼어지지 않았습니다. 돌아가는 사람들을 향해 마을 어르신들은 큰 절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동안 너무 외롭고 힘들었습니다. 와 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며 굽은 허리를 더 굽혀서 인사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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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 다시 공사가 재개되고 할머니들의 벗인 몸이 언론을 통해 보도되었습니다. 이토록 처절하게 싸우는 이유를 이 글을 읽는 당신은 아시나요? 인권활동가들은 인권침해조사단이 꾸려서 밀양을 다시 방문했습니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말합니다. “우리는 그냥 이대로 살고 싶다라고요. 목에 밧줄을 묶고, 옷을 벗고, 땅을 파고 싸우는 이유는 그냥 이대로 농사도 짓고 마을 사람들끼리 웃으며 살고 싶기 때문이랍니다. 부모님 산소가 여기에 있고, 평생 여기서 자랐고, 추석이 되면 자식들이 고향을 찾기 때문에, 여기에서 계속 살고 싶다고 합니다. 그래서 8년째 한전(놈들)과 싸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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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확을 해야 먹고 살텐데, 이렇게 바쁜 시기에 정부와 한전은 다시 공사를 한다고 했습니다. 이번에는 경찰이 가만 두지 않겠다는 엄포까지 놓았습니다. 하지만 그런 것은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할머니, 할아버지는 다시 산을 타고 올라갔습니다. 102일부터 공사라지만 전날부터 밧줄을 온 몸에 감고 산속 움막에서 밤을 지새웠습니다. 저도 127번 현장에서 밤이슬을 맞으며 함께 새벽을 기다렸습니다. 할머니는 전쟁이 언제 시작될지 모르는 긴장감 속에서 잠도 못자고 초조함과 불안함을 이기려 허공에 욕을 내뱉었습니다. “그냥 죽여라, 이 짓을 언제까지 하노, 우리 죽이고 공사해라.‘ ”오늘 내가 죽어야 이 문제가 해결될 것이다라는 말씀을 남기시고 몸에 불을 붙였던 이치우 어르신이 생각났습니다. 대책위도, 인권침해감시단도, 언론사 기자들도, 아무도 이 분들을 말릴 수 없습니다. 공사 중단이 아니고서는 이 분들을 설득할 수 있는 길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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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재를 나르는 금곡 헬기장과 송전탑 건설 현장 곳곳에 각 언론사 기자들과 카메라가 몰렸습니다. 마을 주민들은 수많은 기자와 카메라에게 연거푸 인사를 합니다. 제발 우리 소식을 제대로 전달해 달라고 말입니다. 하지만 신문기사, 뉴스방송으로 나오는 내용들을 보면서 또다시 좌절을 합니다. ‘외부세력이라는 촌스러운 멘트가 또다시 흘러나옵니다. 현장에 한번이라도 방문했던 기자분이라면 귀에 닳도록 들었을 겁니다. “단체에서 온 사람들이 없으면 우리를 들어냅니다. 기자들과 카메라가 있으면 때리지도 않습니다.” 8년을 고립되어 싸웠습니다. 이제야 이 소식이 알려져서 사람들이 찾아옵니다. 기자와 카메라도 와서 찍어 줍니다. 혹여나 이 글을 읽게 될 기자분들에게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제발 이 목소리가 온전하게 전해졌으면 합니다. 믿기 힘들지만, 이것은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사회의 진짜목소리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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