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지 말아요, 다시 꽃은 피는데

조 선 남

 

학이 날개를 펼치듯 펼쳐진 승학산

봄이며 붉게 타오르던 철쭉

그 품에 안겨 살아왔던 보라마을

마을의 들풀처럼 나무처럼 그렇게, 그렇게

그냥 사는 듯, 죽은 듯, 나무인 듯, 풀인 듯,

살아 왔던 고향 땅.

나라를 빼앗고, 땅을 빼앗아도 빼앗기지 않았던

고향산천에 쇠말뚝을 박고, 철조망을 치고

거미줄같은 고압철탑이 들어선다고

밭농사 논농사 포기하며

얼마를 살지는 몰라도 살아 있는 동안은

포기할 수 없었던 보라마을

“살아서 송전탑 들어서는 것을 볼 수 없다”며

불꽃이 되어 타올랐던 보라마을 이치우 어르신

 

울지 말아요, 다시 꽃은 피는데

무덤을 파헤치고 그 위에 송전탑을 세운다고 해도

마을 사람들을 다 죽이고도 송전탑을 세우겠다고 하는

국가 권력, 한국전력

다 끝난 것이라고 포기하지 말아요

지난 8년을 어떻게 싸워 왔는데

애통하지 말아요, 울지 말아요

다시 꽃은 피는데

 

보세요, 다시 꽃은 피는데

봄은 오고 있는데

그 눈물의 세월이

우리들의 영혼을 말리고 태웠던

마을 공동체를 파괴하고 우리들을 이간질하고

교활한 뱀의 혀로 농간하던 한전 놈들은

쇠말뚝을 박고 저희들의 돌무덤을 파고 있는 것이니까요

 

보세요, 봄은 저렇게 다시 우리 곁에 오고 있어요.

다 끝난 것이라 생각하지 마세요,

잠깐 왔다가는 연대라 생각하지 마세요,

보라마을은 밀양에만 있는 보라마을이 아니에요

철탑이 지나는 마을마다.

핵원전이 들어서는 마을마다

한번쯤 왔다간 연대의 손길마다

어르신들의 그 거친 손을 잡은 사람들 가슴에

다시 보라마을의 봄은 오고 꽃은 피고 있어요

 

울지 마세요, 다시 꽃은 피는데




밀양아리랑

천 용 길


날 좀 보소

한 평생 일군 논밭 위로

싸돌아 댕기는 헬기 보느라

여문 곡식 바지런히 거둬들일 들판으로

자리를 꿰찬 시커먼 경찰 보느라

꽁꽁 얼어붙은 이 노인네 얼굴을

지발

동지 섣달 꽃 본 듯이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곱게 분칠하고 수줍게 시집왔던

바드리 마을 부산댁 얼굴에 굽이굽이 그려진

주름살을

동화전 마을 양산댁 손등에 피어난

흙빛 주름꽃을

미우나 고우나 내 자식새끼 길러준

밀양 땅에 살다 가고 싶었구마

인자 저 철탑 들어서면

고마 살란다 아니 안 살란다

지발

동지 섣달 꽃 본 듯이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이치우 할배 가던 날

유한숙 할배 가던 날

다리에 힘이 풀렸구마

눈물 훔치고 앉아있자니

헬기 날아다닐까 철탑 실어나를까

졸이는 마음에

분향소로 달려갔구마

근디

정든 임이 가시는데 인사도 못해

할배 할매

얼굴 좀 보소

 

날 좀 보소

곡식 지어내고

자식 농사 지으면서

욕보이지 않게 살았구마

아침 일찍 일어나 새 아침을 맞자는

새마을 운동도 해봤구마

농협에서 빌려다 쓴

영농자금도 꼬박꼬박 갑았구마

나랏님 녹 먹는

경찰, 면사무소, 한전

우리는 다 믿었구마

인자 안 믿어

철탑에 목맨 조무래기들

곡식 알차게 여문

밀양 들판 좀 보소

 

우리는 철탑 물러날 때까지 아리랑 고개 넘을란다

밀양 촌놈 서울 촌놈 같이 넘자

아리아리랑 쓰리쓰리랑 아라리가 났네




더이상 국가는 필요 없다

siwanore


국가는 점령군처럼 밀양에 왔다손 마디 지문이 닳도록 일궈 온 땅에이 개노무 새끼들국가는 적군보다 더한 웬수로 왔다 사지가 들리고 팔다리가 꺾이고 짓밟히고힘이 없어 속절없이 당하고 버려지는 것이억울하고 서럽고 분하다 전기가 조금 부족하더라도 우린 근근이 살아갈 수 있다원전이 없다면 우린 더욱 잘 살 수 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엔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의 미생물장이 있어서로를 돌보고 가꾸는 손길이 닿으면 고요한 화학작용이 일어난다 반딧불이 켜지고 별빛이 켜지고 마을 마을마다 마음빛이 켜진다우리 생의 무한동력, 이 빛에 의지 해 살아갈 수 있다면 더 바랄 것 없다그렇다 아무 것도 필요 없다요대로 땅 파 먹고 살다가 죽고 싶다학교 밖의 학교에 찾아온 어진이와 누피와 산골소녀와 선아와 함께 땅 파 먹고 살고 싶다학교 밖에서 다시 교실을 세우는 계삼이와 함께 땅 파 먹고 살고 싶다무수한 마음의 광합성 작용만으로도 충분하다 우리는 국가 없이도 서로를 잘 돌볼 수 있다우리는 국가 없이도 서로를 잘 가꿀 수 있다 우리는 국가 없이도 행복하게 웃을 수 있다행복하게 웃는땅이 대표고 미생물이 대표고 비가 대표고 바람이 대표고 햇빛이 대표고 나무와 숲이 대표고 내가 대표고 우리 모두가 다 대표다 더 이상 국가는 필요 없다.

2014년3월1일




그 마을에서 들려오던 소식들

- 밀양과 청도를 생각하며

신 경 현


그 마을에서 들려오던 소식들은

항상 불안이 묻어나기 일쑤였다.

기계톱에 잘린 나무들이 맥없이 쓰러지고

공사 장비를 매단 헬기들이 연신 날아오르는

얼어붙은 골짜기 사이로

무전기 명령들이 오가고

명령을 따라 바쁘게 이동하는

경찰의 발소리들이

어지럽게 마을을 흔들어 놓고 있었다

불빛들, 사람의 마을에 피어나던 불빛들

오늘 내일 하고 있었고

생살이 터지면서 함께 솟구치던 비명소리가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었다

쫓겨난 마음에도 꽃은 피어나겠지만

쭈글쭈글한 손등위로도 새들이 찾아들겠지만

궁핍한 그 마을의 불빛들을 꺼트리기 위한

사주경계는 날이 갈수록 두텁고 단단해져 갔다

철탑이 들어서고 국가시책이 완성되면

그렇겠구나 그 마을, 이제

일을 마치고 돌아와

꾹꾹 눌러 담았던 밥그릇이며 국그릇들이

해거름에 주저앉아 마시던 빈 막걸리통 들이

찢어지고 산산이 부서진 채

쓰러진 폐가에 고스란히 남아

쓸쓸히 저무는 바람소리에

이리 저리 흔들리겠구나

거대한 송전탑에 갇힌 깜깜한 밤하늘에

시린 별빛만 소리 없이 흐느끼겠구나




밀양! 그 생명의 땅에서

배 순 덕(해방글터)


젊은날 부대끼는 세상살이 지쳐 갈 즈음이면 작은 가방하나 매고 무작정 걸었던 능선들 운문산 산기슭을 따라 서로 엉켜 의지하며 자라던 생명들이 산내천 맑은 강으로 모여 어두움이 쌓이면 반딧불되어 너울너울 춤추던 그 생명의 땅에서

따스한 봄볕이 스며든 고사리 분교를 지나 어머니 넉넉한 가슴처럼 드넓은 사자평에서 교만과 오만에 젖은 나를 버리고 더 작은 나를 찾겠다고 무겁게 발걸음을 내딛었던 천황산 그 생명의 땅을 그리워하며

수년동안 자본의 노예가 되어 이공장 저공장으로 떠돌다가 살아온 세월 끝자락에 고단한 노동자의 삶 삭막한 도시생활 등지고 말양! 그 생명의 땅에서 살고 싶었습니다

눈부신 세상도 뜨거운 세상도 아닌 가난하지만 마음 따뜻한 이웃과 햇볕이 내려준 만큼 씨 뿌리고 빗줄기 내려준 만큼 자라고 바람이 불어준 만큼만 거두며 그 생명의 땅에서 살고 싶었습니다

765k송전탑으로 부터 밀양, 이 생명의 땅을 지켜내고 싶습니다




밀양간다.

이철산(대구작가회의 시인)



밀양 간다 밀양 가자

흉물처럼 마을마다 사람마다 가슴마다

박아놓은 쇠말뚝 뽑으러 가자

박아 놓은 국가와 자본의 욕심을 뽑으러 가자

박아 놓은 차별과 막무가내 치욕과 수모를 뽑으러 가자

밀양 간다 밀양 가자

다 필요없다 살던 대로 살고 싶다

호소하다 사정하다 내몰리고 떠밀렸던

아름다운 사람 사랑스런 여인 멋진 사내 살고 있는

사람 살기 좋은 곳 사람 살아가기 좋은 곳

밀양 간다 밀양 가자

위험하기 짝이 없는 핵발전소

대구로 어디로 전기 보낸다는 고압전선 76만5천 볼트

왜 하필 사람 머리 위를 지나나

왜 하필 사람 사는 마을 가로질러 가나

왜 하필 사람과 사람 갈라놓고 몰아붙이나

밀양 간다 밀양 가자

대구 사는 우리들이 저 전깃길

사람 죽이는 저 전깃길 저 쇠말뚝 철탑

필요없다 멈추어라 용서할 수 없다

그리하여 살아야 한다 다시 살려내야 한다

밀양 간다 밀양 가자

한 번 가서 사는 도리를 배우고

한 번 가서 뜨거운 희망 눈물을 배우고

한 번 가서 손 꼭 잡는 질긴 약속을 배우고

한 번 가서 품어주는 가슴 따뜻한 사랑을 배우고

밀양 간다 밀양 가자

한 번 가서 안 되면 두 번 가고

한 번 해서 안 되면 두 번 하고

가도가도 해도해도 안 되면

밀양 간다 밀양 가자 아예 밀양에 살아버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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