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삼척은 90년대 초반 아내가 지역 교사로 재직중일 때 함께했던 곳이다. 그때 나는 아내를 모시며 더러 전교조 삼척지회를 들락거리며 유유자적하고 있었다. 삼척시장 고삐리들이 즐겨간다는 2층 선술집에서 술도 먹어 보고,  해직교사들 양말 파는 데 종일 죽때려도 보고, 저녁에 시작한 술자리를 다음 날까지 이어도 가 보고 참 낭만부르스였다. 학교에 조합원은 없어도 후원회원은 있었다. 1천5백여 명의 해직교사를 둔 전교조를 몰래 후원하던 문화는 참 아름다웠다. 알지? 몸은 같이 못해도 내 마음만은... 8시만 되면 온통 불이 꺼진 시내. 술 한잔에 시국을 논하며 열정으로 밤을 사르던 무리들에게는 다음 날 수업쯤은 매우, 도대체가 참 거뜬한 것처럼 보였다. 와! 지금 생각해도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는지...^^

이번 희망버스를 타고 도착한 삼척은 온통 바뀌어 있었다. 고층 아파트도 많이 들어섰을 뿐만 아니라 시내 곳곳이 온통 가게들 천지다. 20여 년의 세월의 변화가 달갑지 않다. 사람 냄새 나는 조용하고 한적했던 골목은 미처 다 지워지지는 않았으나 구석에 처박혀 상처를 핥고 있었다. 닭 한 마리를 통째로 튀겨주던 통닭집도 사라졌다. 승훈과 원민에게 꼭 맛을 보여주고 싶었는데. 결국 기업 프랜차이즈 닭집에서 한잔할밖에.


2. 

지난 2차 희망버스 때 마을회관에서 함께 묵었던 다큐작가를 다시 만났다. 와! 방가방가! 내가 물어 본 말, 몸에 이상 징후는 없어요? 그는 지난해 후쿠시마에 직접 다녀왔다(강제이주지역인 20km 근처까지). 방사능에 오염된 학교 운동장을 제염한다고 걷어냈으나 달리 갈 데가 없어 한 곁에 쌓아두고 있었으며, 아이들을 차로 실어와 땅을 밟지 못하게 안아서 내려주는 부모들 얘기를 들려주던 그였다. 그리고 인근 식당에서 별 문제없는 것처럼 와구와구 음식을 먹었다는 얘기도. 이 얘기를 들으면서 현지인들도 분명히 문제가 있을 거라고 생각할 것이나 문제가 있다고 드러내지 않는 것이 틀림없다는 생각을 했다. 문제가 있다 해도 어떻게 할 것인가? 모두가 30년을 유기농 농사를 지어왔다는 농부처럼 삶을 마감할 수는 없지 않은가... 별 다른 징후는 없단다. 다행이다. 

중3과 고1 아들을 데리고 온 분이 있다. 다른 건 뭘라도 방사능 오염 만큼은 자신들의 삶에 심각한 영향을 끼치겠다며 희망버스를 타는 아빠와 동행하자고 했단다. "저는 결혼을 할 수 있을까요. 제가 건강한 아이를 낳을 수 있을까요"라고 묻던 일본 소녀가 떠오른다. 아이들은 자신들의 미래를 걱정하는데 이 땅의 어른들은 아이들의 삶을 갉아먹고 있으면서도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조차 모른다. 게다가 뻔뻔하기까지 하다. 제 배 불리겠다고 갖은 지랄을 다 한다. 그러니! 아이들이 나설 수밖에 없다. 


3. 

3층 대책위 사무실은 넓직했다. 1층에 롯데리아가 있는 시내의 노른자위 건물이다. 그런데도 건물주가 대책위 활동에 쓰라고 내준 것이란다. 벌써 1년이 넘었단다. 그만큼 위기의식이 높은 것이리라. 삼척시장 당신은 끝났으~ 주민소환 성공 기원!

하, 영덕은... 참 많이 힘들어 보인다. 탈핵희망버스 탑승객들과 핵발전소 건설 예정지 주민들 충돌을 우려할 정도다. 영해시장 분위기는 더러 박수를 함께 치는 할머니들도 계셨지만, 이게 뭔 일인가 싶은 눈치들이다. 영덕대책위 박혜령 님이 열심히 설명을 하지만... 외롭지 않은 길이어야 할 텐데...

밀양 어르신들이 한 차로 왔다. 탈핵연대가 소풍이기도 하다. 그참, 즐겁지 아니한가. 망할 한전의 거액소송이 목줄을 죄지만 그게 뭐!


4차 탈핵희망버스는 8월 말이나 9월 초쯤이 될 거라고 기획단은 얘기한다. 두 대의 버스였던 것이 5대가 되었다. 4차 때는 몇 대가 될까.

버스를 타는 일은 자신을 까발리는 여행이기도 하다. 이 세상 살면서 아무런 상관도 없었던 사람들과 단지 한 버스라는 공간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껍데기를 한꺼풀 벗어낸다. 다음에 또 만나면 또 그만큼.  낯선 이들의 꺼풀들이 하나씩 쌓여서 에너지가 된다. 날것들의 연대이다. 그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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