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일째다. 지난 겨울에 숨을 거두었지만 봄을 지나 여름이 되어 가는데도 아직 장례를 치르지 못하고 있다. 시신은 차가운 장례식장 냉동고에 모셔진 상태다.

'밀양 사람' 유한숙(당시 74세) 할아버지 이야기다. 지난해 12월 6일 사망했지만 5개월이 지나도록 장례를 치르지 못하고 있다. 고인은 숨을 거두기 나흘 전 경남 밀양시 상동면 고정리 집에서 음독을 했다. 

고인은 한국전력공사(한전)가 지난해 10월부터 '신고리-북경남 765kV 송전선로' 공사를 재개하자 반대 주민들과 함께 농성에 참여하기도 했다. 돼지를 키우던 고인은 "송전탑 보상을 받을 수 없다"는 한전 관계자는 말을 듣고 송전탑 공사에 더 적극 반대했다. 

'선친의 억울한 죽음의 진상을 규명해... '




▲  밀양 송전탑 공사에 반대하다 음독자살했던 고 유한숙 할아버지가 살았던 밀양 상동면 고정리 소재 축사 건물 외벽에, 유가족들은 한국전력공사의 사과를 촉구하는 내용의 펼침막을 내걸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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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은 병원을 찾아온 경찰관에게 "송전탑 때문에 농약을 마셨다"고 진술했다. 그런데 경찰은 고인이 음독한 이유가 송전탑 때문이라 단정하지 않고 음주 등의 '복합적 원인'이라 발표했다. 한전도 경찰 발표에 동조하는 입장이다. 

고인의 빈소는 밀양 영남병원 농협장례식장에 마련되었고, 당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조화를 보내고, 에너지실장은 조문을 오기도 했다. 유족들은 '송전탑 공사 중단'과 '원인 규명' 등을 요구하며 장례를 무기한 연기하기로 했다. 

밀양765kV송전탑반대대책위(대책위)와 주민들은 밀양 영남루 맞은편에 시민분향소를 설치했다가 지난 2월 3일 밀양 삼문동 강변둔치 주차장에 컨테이너를 설치해 옮겼다. 시신은 냉동고에 그대로 두고 있다.

유족과 대책위는 지난 1월 경남도청과 5월 8일 서울 국회의원회관에서 각각 기자회견을 열어 고인이 '송전탑 때문에 음독했다'는 내용이 담긴 육성녹음을 공개했다. 당초 '복합적 원인'이라 했던 경찰은 이와 관련해 반박하지 않고 있다.

고인의 유족은 부인과 아들 둘, 딸 하나가 있다. 누구보다 유족들은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 큰아들인 유동환(46)씨는 "청와대, 국회, 산업통상자원부, 국민권익위 등에 탄원했지만 아직도 해결되지 않고 있다"며 분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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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밀양 송전탑 공사에 반대하다 음독자살했던 고 유한숙 할아버지는 밀양 상동면 고정리에서 축사를 지어놓고 돼지를 키우고 있었다. 유 할아버지는 2013년 12월 4일 음독한 뒤 병원에서 치료를 받다가 나흘 뒤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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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족들은 고인이 살아생전 돼지를 키우던 축사 건물 외벽에 "선친의 억울한 죽음의 진상을 규명해 주십시오. 살인 한전은 불법공사를 중단하고 선친과 유족에게 사죄하십시오"라는 내용의 펼침막을 내걸어 놓았다. <오마이뉴스>는 유동환씨와 13일 저녁 이야기를 나누었다.

"모두 힘들어 한다 ... 냉동고 사용 비용 부담"

- 어머니를 비롯한 가족들이 모두 힘들어 할 것 같다. 
"힘들다. 어머니를 비롯한 가족들은 더 힘들어 하신다. 한전이 진정성 있게 나오지 않고 있다. 우리는 장례를 빨리 치르고 싶다."

- 냉동고 사용 비용도 만만찮을 것인데.
"냉동고 사용 비용은 대책위와 유족들이 지불하고 있다. 유족 입장에서 부담이 많이 되는 게 사실이다. 장기간 사용하다 보니 부담이 된다."

- 한전과 접촉을 했다. 
"한전 측과 몇 번 접촉이 있었다. 비공식적인 자리의 접촉이었다. 그런데 진전은 없다. 현재로서는 내놓을만한 이야기도 없는 상태다. 우리 입장에서는 지방선거 전에 아버지 문제가 해결되기를 바란다."

- 지금까지 한전 관계자와 접촉해 본 느낌은. 
"정부나 한전은 송전탑 문제와 유족 문제를 같이 해결하려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 같다. 송전탑 문제가 해결되면 아버지 문제도 해결된다고 보는 것 같다. 아버지 문제를 먼저 해결하면, 보상 내용이 주민들에게 알려질 것이고, 그렇게 되면 다른 주민들한테도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정부측이 염려하는 것 같다."

- 한전과 구체적인 협상을 기대해 볼 수 없나? 
"마냥 시간을 끌 수 없다.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본다. 막연하게 한전의 조치만을 기다릴 수도 없고, 앉아만 있을 수도 없는 상황이라 난감하다."

- 보상이라면?
"돼지 키우는 농장과 집이 붙어 있다. 아버지는 축사가 송전탑 영향을 받으니까 이주보상을 바랬다. 그런데 한전은 안된다고 했다. 이주 보상이 된다고 했다면 아버지는 그렇게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한전은 이주보상을 해주면 형평성에 맞지 않고 선례가 된다고 여기는 모양인데, 받아들일 수 없다. 우리가 제대로 된 보상을 받아야 주민들한테도 좋다. 개인 욕심으로 장례를 치르지 않는 게 아니다. 한전은 이 문제에 대해 한번도 진정성 있는 자세를 보이지 않았다."

- 조환익 한전 사장을 만났다고 들었다. 
"지난 1월 국회에서 만났던 적이 있다. 조 사장은 비공식적으로 사과를 했다. 당시 조 사장은 '정말 선친이 돌아가신데 대해 유감을 가지고 있고, 당시 조문을 가려고 했지만 주민들이 극렬하게 항의할 것 같아서 가고 싶어도 가지 않았다'고 하더라. 그러면서 조 사장은 '추후에라도 조문을 가겠다'는 말도 했다. 당시 저는 그 말을 듣고 '아버지 죽음에 책임을 지고 정당한 보상을 하겠다는 것이냐'고 했더니 '그렇다'고 했다."

- 경찰이 사인을 왜곡했다고 주장한 뒤 반응은?
"경찰은 '복합적 원인'이라고 해서 송전탑 때문이 아니라 '일반사(死)'로 규정했다. 가정불화도 없었는데 경찰은 마치 가정불화가 있었던 것처럼 발표했다. 그날 아버지는 누구나 식사하면서 한 두 잔 하는 정도의 술만 드셨던 만큼 음주가 원인이 될 수 없다. 경찰의 발표는 허무맹랑하고 날조된 것이다. 아버지는 채무도 없었다. 아버지가 병원에 계실 때 경찰관이 와서 '어르신 왜 그러셨습니까'라고 물었을 때 아버지는 '765 송전탑 때문'이라 했고, 그 내용이 담긴 육성녹음도 공개했다. 우리 주장이 틀리다면 기자회견 뒤에 경찰이 반박해야 하는 것 아니냐. 그런데 그런 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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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계삼 밀양765kV송전탑반대대책위 사무국장(왼쪽)과 고 유한숙 할아버지의 큰아들인 유동환씨가 3월 22일 저녁 밀양 상동면 고정리에서 열린 '송전탑 반대 촛불문화제'에 참석해 촛불을 들고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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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찰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은?
"아버지께서 송전탑 때문에 음독하셨다는 진술을 경찰이 녹음을 해서 가져갔다. 그것만 밝혀지면 경찰이 왜곡했다는 것은 명백하게 드러난다. 이같은 사실은 현 정부도 알고 있을 것이다. 경찰이 사인을 왜곡한 것은 엄청난 일이다. 지금이라도 경찰은 사인을 제대로 밝혀야 한다."

"상부기관에 탄원서 냈더니, 밀양경찰서로 이첩 통보"

- 경찰청장한테 탄원서를 냈다고 하던데. 
"경찰청장한테 아버지 사인을 제대로 밝혀달라고 요구했다. 밀양경찰서의 수사가 잘못되었으니 내부 감사를 하든지 해서 바로 잡아달라고 했다. 그런데 그 뒤에 밀양경찰서 수사관한테서 전화가 왔더라. 경찰서로 나와서 이야기를 해달라는 것이었다. 말도 안 되는 짓을 하고 있다. 경찰청장한테 탄원서를 냈는데 그 탄원서가 밀양경찰서로 내려와 있다니.경찰청에 감사기구도 있을 것이니까 조사를 해달라고 했던 것인데 그것이 왜 밀양경찰서로 내려왔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 정부 기관에는 어떤 호소를 해보았나. 
"청와대, 국무총리실, 산업통상자원부, 몇몇 국회의원한테도 탄원서를 내보았다. 그런데 다들 밀양경찰서나 한전으로 이첩했다는 답변뿐이었다. 밀양경찰서의 수사가 잘못되었다고 상부기관에 탄원서를 냈는데, 수사를 잘못했다고 하는 밀양경찰서로 이첩하고, 거기에 가서 이야기를 하라는 게 말이 되느냐. 이것은 책임 회피다."

- 국민권익위원회는?
"국민권익위원회에 경찰의 잘못된 수사로 국민의 권익이 침해되었으니 재수사를 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런데 어떤 답변이 왔느냐 하면 '경찰의 수사 결과를 본 결과 부당하지 않다'는 내용이었다. 경찰 수사가 잘못됐다고 했는데 '경찰 수사 결과를 보니'라는 대답은 말이 안되는 거 아니냐. 국민권익위가 의지가 있었다면 유족과도 만나서, 객관적으로 비교해서 판단을 했어야 하는 거 아니냐. 국민권익위의 답변을 보니 낯이 뜨거웠다."

- 대통령한테 하고 싶은 말은?
"아버지 죽음과 이후 벌어진 상황을 볼 때, 세월호 참사 못지 않다고 본다. 검찰은 세월호 선장에 대해 '부작위에 의한 살인죄'를 적용한다고 하더라. '부작위'는 어떤 조치를 하지 않고 내버려 두어서 사람이 죽게 되었다는 뜻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사인을 왜곡하는 것은 고의성이 다분하다고 본다. 한전이 송전탑과 관련해 제대로 보상을 하지 않고, 경찰이 사인을 왜곡한 것에 대해, 대통령은 왜 가만히 있는지 모르겠다. 제대로 사인 규명을 해달라고 정부기관에 탄원했지만 그 나물에 그 밥인지 서로 비호하기에 바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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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밀양 송전탑 공사에 반대하며 음독자살했던 고 유한숙 할아버지가 운명한지 한 달째인 6일 오전 밀양765kV송전탑반대대책위와 유족들은 경남도청 브리핑룸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고인이 숨을 거두기 이틀 전인 2013년 12월 4일 병상에서 "765 때문에 농약을 마셨다"고 하는 내용의 육성 녹음을 공개했다. 사진은 이계삼 대책위 사무국장이 노트북에 저장된 음성파일을 틀어보이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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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시민분향소는?
"시민분향소가 영남루 맞은편 노천에 있다가 지금의 장소로 옮겨, 컨테이너에 설치해 놓았다. 영남루 맞은편 노천에 있을 때는 매일 자리를 지켰다. 지금의 장소로 옮긴 뒤, 주민들은 당번을 정해 돌아가면서 분향소를 지키다가, 계속되지 않았다. 공사 현장의 농성장에서 긴박한 상황이 이어지다보니 그런 측면이 있다. 그러나 어떤 일이 있더라도 분향소에 촛불은 밝히고 향은 피워야 하고, 술은 따라 놓아야 하는데, 지금은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다. 지금은 컨테이너 문을 닫아 놓았다.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

- 더 하고 싶은 말은?
"송전탑 반대 주민들이 농성장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제는 장례를 치를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힘을 모아 주어야 하고, 단체행동도 필요하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조화를 보내고, 에너지실장은 조문까지 왔다. 정부가 아버지 죽음에 관련이 없다면 왜 그렇게 했겠느냐. 산업통상자원부는 책임 있는 자세를 보여야 하고, 나 몰라라 하며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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