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이치우 어르신의 희생을 기리며

765kv 송전탑 문제의 정의로운 해결을 촉구하는,

밀양 영남루 금요일 촛불 미사

 

 

강론 : 문규현 신부, 2012년 7월 13일(금)

 

 

반갑습니다.

지난 4월말, 탈핵희망버스 타고 왔을 때 뵙고, 두 달 반 만입니다.

 

하루하루, 힘드시지요. 최근에 밀양에서, 청도에서, 신고리 원전 공청회에서 벌어진 사태들을 뉴스로 봤습니다. 속상하고, 아프고, 안타깝습니다.

 

지금 제주강정마을도, ‘더 죽어라 더 죽어라’ 합니다. 대법원에서 해군기지 공사는 적법하다는 판결을 내리고, 후원금 모금도 불법이라고 막아버렸습니다. 해군이 천주교 미사까지도 대놓고 방해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요새 절 보면 그래요. 워쩐데요, 워쩐대요.

뭘 워째요. 계속 가는 거지.

 

단 한사람이라도 포기하지 않는 한 희망은 있는 것이고, 희망이 있다면 또한 포기해선 안 되는 것이지요. 희망은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길과 같아서 가는 사람이 많으면 희망의 길이 생기는 것이고, 또한 오직 내가 어느 길을 선택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절망이란 곧 희망의 다른 이름입니다. 우리가 절망한다는 것은, 지금과 다른 세상을 강렬하게 열망하고 있다는 반증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현재 무언가에 아파하고 분노한다는 것은 우리가 합당하고 공의로운 세상을 꿈꾼다는 것을 보여주는 징표입니다.

 

미국의 위대한 흑인 인권운동가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처음으로 흑인 민권운동에 나서면서 했던 연설의 일부를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때가 왔습니다.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때가 왔습니다. 차별받고 모욕 받고 억압의 잔인한 발차기를 당하는 것에 신물이 난다는 말입니다. 이제 우리에게 저항 이외의 다른 대안은 없습니다. ... 우리는 오늘 밤 이곳에서 그 인내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유와 정의를 찾으려고 합니다. 민주주의의 위대한 영광 중 하나는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 저항할 권리를 보장한다는 것입니다. .... 당신이 하느님의 사랑과 품위를 지닌 채 용감하게 저항한다면 미래의 세대를 위한 역사책에는 이렇게 기록될 것입니다. ‘한 때 문명이라는 혈관에 새로운 의미와 위엄을 불어넣은 위대한 흑인들이 살았다.’ 이것이야말로 우리의 도전이며 진정한 의무입니다.“

 

여기 있는 우리도 지금 어떤 시대를 살고 있고, 우리의 시련과 고통이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알아야 합니다.

 

현재 우리 역사는 국가 중심시대를 종식시키고 국민 중심시대로 전환해가고 있습니다. 국가가 나랏일이라는 명분으로 일방적이고 폭력적으로 국민들의 생존권과 행복추구권을 좌지우지하는 것을 더 이상 용납하지 않는 시대로 나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 국가중심주의는 특히 힘없는 소수자들, 저항하기 힘든 시골사람들 희생시키는 걸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합니다. 이걸 국가폭력이라고 합니다.

 

박근혜 씨가 이번에 대선에 나오면서 이제 ‘국가의 시대가 아닌 국민의 시대를 열겠다.’ 이런 말을 했습니다. 정치인이다 보니 은근 눈치는 있습니다. 그렇다면 박근혜 씨는 가장 먼저, 국가폭력에 희생된 이들을 찾아나서야 합니다.

 

여기 밀양에 와서 이치우 어르신 산소에 가서 절하고, 주민들에게 사죄하는 걸로, 진심을 보여줘야 합니다. 제주강정으로 날아가서 주민들에게 ‘죄송하다, 다시 시작하자’고 말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런 일은 절대 없을 겁니다. 박근혜 씨는 단 한 번도, 국민이 아파하는 현장에 나타난 적이 없는 사람입니다. 더구나 그 아버지 박정희가 바로 가장 극악한 국가폭력의 주모자였으며, 개발독재를 정당화한 사람입니다.

 

땅 주인 동의 없어도 맘대로 토지수용을 가능하게 하는 법 때문에 밀양과 강정이 생고생 고생하는 그 뿌리가 바로, 박정희 시대에 있습니다.

 

국민중심의 시대를 주도하고 이끌어가는 주체는 표 얻으려고 선거 때 구호만 요란한 정치인들이 결코 아닙니다. 바로 국민 자신, 여기 있는 한 사람 한 사람입니다.

 

국민중심의 시대는 특히 억울하고 고통 받는 사람들, 별 볼일 없는 사람들, 사회적 희생자들이 새 역사의 주인공이요 역사의 영웅이 되고 있습니다.

 

나라가, 정치가, 법이, 공권력이 우리를 생각해주지도, 지켜주지도 않으니까 우리 스스로 일어나고, 우리 스스로 이겨가고 있는 것입니다. 세상은 언제나 이렇게 변화해왔습니다.

 

핵발전소, 전쟁과 군수산업에 대한 저항이 거세지고 있습니다. 이것들은 반생명과 반평화, 탐욕과 성장 중독으로만 먹고 삽니다.

 

그러나 이제 시대는 탐욕의 시대에서 생명의 시대로 가고 있습니다.

성장 중독의 시대에서, 성숙과 성찰의 시대로 전환하고 있습니다.

 

가진 자가 더 갖고, 또 가지려는 것, 남을 짓밟고 나만 성공하고 잘 살면 된다는 것, 시골사람들 희생시켜 도시사람들 편안하면 된다는 것, 이런 부도덕한 사회구조와 잘못된 정신세계는 점점 힘을 잃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자부심을 갖고, 누구보다 심지 있게, 이 새로운 시대, 진짜 하느님 나라를 살고 만들어가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바로 그런 시대를 열어젖히고, 직접 보여주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성모마리아가 예수님을 수태하고 부른 노래, 마니피캇을 떠올려보십시오. 하느님 나라는 바로 이런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 팔로 권능을 떨치시어

마음속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습니다.

통치자들을 왕좌에서 끌어내리시고 비천한 이들을 들어 높이셨으며

굶주린 이들을 좋은 것으로 배불리시고

부유한 자들을 빈손으로 내치셨습니다. (루가 1,46-55)

 

또 예수님께서 산상에 오르셔서 ‘진짜 행복’이란 이런 거라고 제자들에게 가르치신 ‘진복팔단’도 기억해보십시오.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행복하여라, 슬퍼하는 사람들! 그들은 위로를 받을 것이다.

행복하여라, 온유한 사람들! 그들은 땅을 차지할 것이다.

행복하여라,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 그들은 흡족해질 것이다.

행복하여라, 자비로운 사람들! 그들은 자비를 입을 것이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을 볼 것이다.

행복하여라,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의 자녀라 불릴 것이다.

행복하여라, 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이 진복팔단을 입에 웅얼거리면, 절로 기쁘고 행복해집니다. 여러분도 수시로 해보세요. 이런 가르침을 가슴에 품을 수 있고, 이런 가르침을 주신 분을 구세주로 믿고 따르는 우리 신앙인들은 참으로 복되고 복된 사람들입니다.

 

고리원전 1호기 폐쇄, 밀양 송전탑 건설 핵발전소 건설 저지,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 반대, 이 모든 운동이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무엇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저는 내일 ‘강정촛불 이어 켜기’ 부산시민대회에 참석합니다. 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하는 평화의 촛불이, 전국을 돌아가며 밝혀지고 있습니다.

 

국책사업으로 인한 똑같은 희생자로서 강정사람들은 언제나 밀양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멀지 않아 꼭 찾을 것입니다. 밀양과 강정은 역사적으로 가장 중요하고 의미 있는 시기에, 가장 중요하고 의미 있는 일을 해내는 주인공들입니다.

 

시간과 역사는 우리 편입니다.

힘들어도 서로 감사하고, 서로 격려하고, 서로 인내하며, 이 평화의 여정에서 축하할 일 함께 많이 만드십시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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