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인생론

― A. 아인슈타인, "나는 이렇게 믿는다" (을유문고 234, 1979) 중에서―


아인슈타인의 인생론을 읽다가 “이 세상에서 우리의 처지는 나그네와 같은 것이다”라는 문장에 심장이 고요해지는 긴장감으로 몰입하던 때가 기억납니다. 복학생 시절이었습니다. 과학과 기계론적 사유에 대한 염증으로 절어있는 문학도에게 닥쳐온 아인슈타인의 인생론, 그것이이 풍겨내는 자유와 정의에 대한 열정, 그리고 겸손과 거룩함의 내음은 저를 완전히 사로잡았습니다. 

‘가장 좋아하는 글’ 따위의 구분을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이 글은 독자 여러분들이 출력하셔서 한번 소리내어 읽어보셨으면 하는 바람을 실어 전합니다. 참으로 멋진, 그리고 감동적인 인생론입니다. 아인슈타인, 우리나라에서는 머리좋은 사람의 대명사로 머리좋아지게 하는 우유 광고에 이용되는 바로 그 아인슈타인입니다. [이계삼] 


이 세상에서 우리의 처지는 나그네와 같은 것이다. 우리들 누구나가 잠시 지구를 찾아오는데 어째서 그렇게 되는지는 모른다. 하긴 때로는 그 목적을 알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 때가 있기도 하지만.


그러나 매일 매일의 생활의 관점에서 보면,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이 한 가지 있다. 그것은, 인간은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이 땅 위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즐거움이나 행복을 함께 하고 있는 친한 사람들은 물론이요, 또 동정(同情)이라는 굴레로 맺어져 있는 무수한 미지(未知)의 사람들을 위해서 인간은 존재하는 것이다. 하루에도 몇 번씩 나는 나 자신의 내적․외적 생활이 남들의 수고의 덕을 얼마나 입고 있는지를 알고, 내가 받은 것과 같은 값을 갚도록 힘써야겠다고 진지하게 생각한다. 


나는 남들의 노동으로부터 지나친 은혜를 입고 있지나 않나 하는 생각에 마음이 편안하지 못할 때도 자주 있다. 나는 우리가 철학적인 의미에서의 어떠한 자유나 다 향수(享受)할 수 있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왜냐하면, 우리는 밖으로부터의 강압에 의해 행동할 뿐만 아니라, 안으로부터의 필요에 의해서도 행동하기 때문이다. 


사람은 분명히 그 원하는 바를 행할 수가 있다. 그러나 인간은 무엇을 원할까를 결정할 수는 없다.


이 쇼펜하우어의 말은 청년시절의 나에게 큰 감명을 주었다. 그리고 인생의 고단함을 보고 또 체험할 때에는 항상 나를 위로해 주었다. 이 확신은 항상 관용의 원천이 된다. 생각건대 그것이 있음으로써 우리는 자신에 대해서나 또 남들과 접촉할 때에 화내지 않고 도리어 유머러스하게 접촉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존재이유 내지는 일반적인 생의 의미를 끊임없이 추구하는 것은, 객관적인 견지에서 보면 완전히 어리석은 짓인 듯이 여겨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은 어떤 이상(理想)을 품고 있으면서 그것을 자기의 뜻과 판단의 길잡이로 삼고 있다. 진리․선함․아름다움―이것이 나의 이상이며, 이것이 항상 내 앞길을 비추고, 나에게 생활의 기쁨을 충족시켜 주었다. 안락이나 행복 같은 것을 인생의 목적으로 삼으려고는 생각조차 한 적이 없다. 그런 것을 기초로 하여 구성되는 윤리체계가 걸맞는 것은 마소[馬牛]의 무리뿐일 것이다.


예술이나 과학의 연구에서 뜻을 같이하는 친구들과 협력해서 영원히 도달하기 어려운 것을 추구해간다는 기분이 없었던들 내 생활은 공허한 것이었을 것이다. 나는 어릴 적부터 인간의 야심에 의해 곧잘 고정되는 흔해 빠진 한계를 경멸해 왔다. 재산, 외면적인 성공, 세평, 호강, 그런 것들은 언제나 천덕스러운 것으로 여겨졌다. 나는 간소하고 겸손한 생활이야말로 모든 사람에게 최상의 것이자 몸과 마음 모두를 위해서도 최상의 것이라고 믿는다.


나는 사회정의나 사회적 책임에 대하여 열정적인 관심을 가지고 있는데, 이것은 내가 사람들과 직접 교제하기를 좋아하지 않는 것과는 기묘한 대척을 이루는 것이다. 나는 단기용(單騎用) 말[馬]과 같은 기질이 있어서 팀워크에는 맞지 않는다. 나는 국가․친구, 또는 가족들과도 속을 터놓았던 적이 없다. 그러한 교제에는 항상 어쩐지 냉담성이 따르고 있었다. 그리고 나 자신 속에 틀어박히고 싶다는 욕망이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더해 가는 것이다.


그러한 고독은 때로는 비참한 것인지도 모르지만, 그러나 나는 남의 이해나 동정으로부터  외떨어지는 것을 아쉬워하지는 않는다. 그에 의해 얼마쯤 잃는 것이 있기도 하겠지만, 그 대신 다른 사람들의 습관․의견․편견 등에서 초연할 수 있다는 점에서 충분히 보상이 된다. 변해가는 기초 위에 마음의 의지처를 구하고 싶지는 않다.


나의 정치상의 이상은 민주주의이다. 그런데 내가 바라지도 않는 과분한 존경을 받아온 것은 운명의 장난이다. 아마도 이 아부는 내가 미력하나마 발전시킨 이론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충족되지 않는 원망의 소산일 것이다.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어떤 한 사람이 계획하고 명령하고 책임의 과반(過半)을 지는 것이 절대로 필요하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지도받는 사람들이 위로부터 몰아세워져서는 안 된다. 그리고 그들에겐 지도자의 선택이 허락되는 것이 당연하다. 나에게 차별이란 권력에 근거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폭력적인 귀족정치는 반드시 쇠퇴하는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폭력은 필연적으로 덕(德)과 의(義)를 상실한 자들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역사가 증명하듯이 저명한 폭군 다음에는 무뢰한이 승계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나는 현재 러시아, 독일, 이탈리아에 존재하는 정치형태에는 단호히 반대해 왔다. 유럽적인 민주주의 형태가 불신을 초래한 것은, 일부 사람들이 글렀다고 말하는 것처럼 민주주의 그 자체의 기초이론이 나쁘기 때문이 아니라, 정당 단체들이 인격을 가지지 않는 데다 정치적 지도권의 불안정이 따랐기 때문이다.


우리의 황망한 생활에서 참으로 값진 것은 국가가 아니라, 창조적․감수적(感受的) 개성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일반대중이 이상(理想)을 상실하고 무감각해진 가운데서 고귀하고 숭고한 것을 만들어내는 개성, 이것이 가장 값진 것이다.


이러한 명제로부터 군중심리의 가장 천박한 소산인 군대(軍隊)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 음악의 장단에 맞추어 대오를 짓고 행진하기를 좋아하는 인간에 이르러서는 경멸할 말조차 없다. 그런 자들에게 대뇌가 주어진 것은 잘못으로써, 그들에게는 척추만 있으면 충분했다. 그들의 방자스러운 영웅주의, 무의미한 폭력, 거창한 과장뿐인 애국심, 나는 이러한 것들을 얼마나 싫어했는지 모른다. 전쟁은 비열하고 천박스런 것이며, 나는 그런 행위에 참가할 바엔 차라리 육시처참(戮屍處斬)을 당하는 편이 낫다.


인간성을 모독하는 이와 같은 오점(汚點)은 즉시 불식되어야 한다. 만일 국민의 상식이 영리상․정치상의 이유로 학교나 출판물 등을 통해서 조직적으로 타락당하지 않았던들 인간의 본성은 전쟁과 같은 악행을 훨씬 이전부터 일소해 버렸으리라 생각된다.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것 가운데서 가장 아름다운 것인 신비이다. 신비야말로 모든 예술, 모든 과학의 원천이다. 이 가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 외경(畏敬)에 압도되어서 경이로움에 황홀하게 도취될 수 없는 사람은 죽은 사람이나 다름없다. 그의 눈은 옹잇구멍이다. 


이 생명의 신비의 통찰은 외경(畏敬)의 정과 결합되어 종교를 낳는다. 우리가 헤아릴 수 없는 것이 실제로 존재하고, 그것이 우리의 유치한 능력으로는 겨우 그 일부밖에 이해할 수 없는 그런 최고의 예지, 가장 찬란한 미(美)로 우리 앞에 나타난다는 것을 아는 것, 이 감정이야말로 진정한 종교의 핵심을 이루는 것이다. 이런 뜻에서, 그리고 이 뜻에서만 나는 진지한 종교가에 속한다.


나는 자기의 창조물인 인간을 상벌(賞罰)하는 신을 상상할 수가 없다. 신이란 요컨대 인간의 약함의 반영 바로 그것이다. 나는 인간의 혼이 육체가 죽은 뒤에도 살아남는다는 것을 믿을 수가 없다. 그것은 약한 인간이 두려움 때문에, 또는 어리석은 자기중심주의 때문에 생각하는 것이다. 나로서는 영원히 계속되는 생명의 신비를 응시하고, 얼마간 지각할 수 있는 우주의 놀라운 구조를 깊이 생각하고, 자연히 나타나는 진리의 아주 작은 부분만이라도 이해하려고 미흡하나마 노력하는 것으로도 충분하다.


A.아인슈타인(1879-1955) - 독일의 이론물리학자. 1921년에 노벨물리학상을 받았으며, 나치의 유태인 탄압을 피해 1933년에 미국에 망명하여 1940년에 귀화하였다. 이 글은 "나는 이렇게 믿는다"(을유문고 234, 1979)에서 발췌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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