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이 따사로운 오후였는데도 방 안의 커튼은 모두 내려져 있었습니다. 거실에선 창문을 통해 옆집이나 마당을 다 볼 수 있었지만 오히려 그 창문은 꽁꽁 싸매 있었습니다. 닫혀 있는 창문, 내려진 커튼. 그 틈으로 겨우 비집고 들어온 햇살이 안쓰러워 보일 정도였습니다. “내 사는 게 이래요.” 라고 담담하게 말씀하시는 동화전 마을의 권귀영 어머니. 인터뷰를 하면서 사람, 사람,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참 많이 할 정도로 사람을 좋아하는 권귀영 어머니였지만 무엇이 그녀를 동굴 속에 가두어 버린 걸까요. 안타깝지만 여전히 희망은 사람이라고 굳게 믿는 동화전 마을의 권귀영 님을 소개합니다.

 

김우창(이하 나) : 오늘은 날씨도 춥고 비가 온다고 했는데, 날씨가 좋네요. 비도 안 오고.

 

권귀영 어머니(이하 권) : 요 며칠은 집에만 있어서 몰랐어요. 하하하. 여기 봐요. 저는 집에 있으면 이렇게 살아요. 창문은 닫고, 아침이 되면 커튼을 내려요. 저 사람들 보기 싫어서. 밖에 보기 싫어서요.

 

: 아이고. 송전탑도 그렇고. 합의한 주민들과의 관계도 사실상 끊어졌겠네요.

 

: 안타깝죠. 원래는 옆집에 사는 사람들이랑 참 친했어요. 송전탑 싸움을 하기 전 에는. 처음부터 원수였던 건 아니고. 같이 식사도 하고 자주 놀러 가고 또 그 사람들이 놀러 오기도 하고. 나는 우리 집에 누가 놀러 오는 거 참 좋아하거든요. 사람을 좋아하는데. 근데 이제는 ()은숙이네 말고는 가는 곳이 없으니까. 거기 밭일 도와주러 가거나 그냥 집에 있거나 그래요. 데모를 안 할 때는 그렇게 지내요.

 

: 그럼 이곳이 고향이세요, 밀양에 계속 사셨어요?

 

: 아니에요. 부모님의 고향은 밀양 가곡동이랑 다원근처인데 저는 부산에서 쭉 살았어요. 여기 이사 온 지는 얼마 안 돼요. 7년 됐나?

 

: 그럼 이사 올 때는 송전탑에 대해선 전혀 모르고 오신 거예요?

 

: 그렇죠. 그 전에는 계속 왔다 갔다 살다가. 제 작년부터 아예 이사 와서 살았죠. 사실 여기에 친척이 사는데. 그 아즈메가 이 동네로는 절대로 송전탑이 안 들어올 거라고 했어요. 친한 아즈메도 있지, 또 선산도 앞에 있고 집도 예쁘지. 그래서 집을 본 그날 바로 계약 했어요.

 

: 그럼 혹시 이곳에 이사 온 걸 후회하거나 좀 부정적으로 생각하진 않으세요?

 

: 저요? 에이. 아니에요. 일로 이사 오기 잘했죠? 잘했지. 전 우리가 데모하기 잘했다고 생각해요. 안 그랬으면 이렇게 좋은 사람들 못 만났지. 나는 이곳으로 이사 오고 데모한 거 절대로 후회 안 합니다. 나는 옳은 길을 가는 것이라고 생각하니까. 나는 여기 밀양에 오지 않았다면 어떤 일이 옳은 지를 절대로 몰랐을 겁니다. 나는 여기 잘 왔다고 생각해요. 사실 부산에 있을 때는 바쁘기도 하고 관심도 없어서 이런 거를 접하질 못했어요.

 

: 그럼 여기 오시고 나서 언제 처음 싸우러 나가셨어요? 송전탑 공사 막으러.

 

: 처음에는 우리 남편이 많이 갔죠. 난 성격이 워낙 불같아서 일부러 그런 충돌 상황을 피하기도 했었고. 근데 우리가 이사 오자마자 큰 싸움이 계속 연달아 난 거예요. 바드리에서. 그래서 저도 어쩔 수 없이 나갔죠. 제일 기억에 남는 건 96번에서 싸운 거예요.

 

: 96번 송전탑이요?

 

: . 96. 난 지금도 제일 가슴에 맺히는 게 그곳이에요. 우리 남편이 96번 현장을 지키면서 그곳에 1미터도 더 되는 돌 탑을 개나 쌓았거든요. 돌 하나하나에 송전탑 반대’, ‘송전탑 건설 반대등의 소원을 빌면서 쌓아 올렸어요. 그때 손가락 골절이 나도 병원에 가지도 않고 참으로 정성스레 세운 탑이에요.

 

: 그럼 그 탑이 이후엔 어떻게 됐는데요?

 

: 제 작년 10월 중순이었나? 그때 이장이던 사람이 하루는 급히 내려오라고 하는 거예요. 중요한 마을 회의가 있다면서. 사실 우리는 그때까지 딱 한 번만 송전탑 현장을 비웠거든요. 태풍이 심하다고 한 날, 그 때 빼고는 계속 지켰는데. 그 사람이 내려가자고 한 거죠.

 

: 그럼 다들 내려가셨어요?

 

: 그 말 듣고 할머니들은 내려갔지. 나랑 남편이랑 록키(강아지). 우리 셋만 지키고 있다가 우리도 할 수 없이 내려갔거든요. 회의를 한다고 했으니 어쩔 수 없잖아요. 근데 우리가 내려오자마자 경찰들이 그 앞을 막고 그 안에서 한전놈들이 펜스를 치고 다시는 못 들어가게 한 거예요.

 

: . 그럼 그 이장이란 사람이 앞잡이 노릇을 한 거네요?

 

: 그렇죠. 그때 만해도 합의를 안 했었는데. 그 직후에 바로 합의를 했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그 사람한테 마을 팔아먹은 놈이라고 욕을 했어요.

 

: 아 그럼 아버님이 쌓았던 돌 탑은 어떻게 됐어요?

 

: 못 들어갔죠. 근데 당연히 한전이 그것도 무너뜨렸겠죠. 그래서 전 우리 남편이 송전탑 반대를 염원하면서 정성스럽게 만든 그 돌 탑을 지키지 못한 것이 제일로 속상하고 지금도 가슴에 맺혀있어요.

 

: 그렇겠네요. 그것도 믿었던 주민에 의해서 송전탑 부지도 빼앗기고, 그곳에 만든 돌탑까지 무너진 거니까... 그럼 그렇게 힘이 될 때 의지가 됐던 사람들이 있었어요?

 

: 있죠. 박은숙이죠. 지금이야 이 마을에서 제일로 친한 게 박은숙인데. 이사 올 때만 해도 몰랐어요. 싸우면서 알았지. 박은숙한테는 내가 고마운 게 많아요. 우린 소띠 띠동갑 이에요. 나이가 한참 어린데도 참 성숙해요. 뭐든지 사람을 진심으로 대합니다. 내가 제일 힘들었을 때 나를 진심으로 걱정해주고 내 곁을 지켜준 사람이라서 나한텐 최고로 고마운 사람이에요. 그래서 난 박은숙이 말이라면 무조건 따라요.

 

: 그래도 다행이네요. 마을에서 의지가 되고 힘이 되는 사람이 있다는 게.

 

: 그럼요. 성숙한 사람이라서 내가 은숙이랑 많이 의논을 해요. 은숙이가 뭐라고 하면 난 듣고, 또 내가 뭐라고 하면 그것에 대해 공감을 하는 편이에요. 그래서 우린 둘 다 (성격이) 잘 맞는 사이죠. 짝지죠 짝지. 은숙이랑 내랑 마음이 맞으니까 이 힘든 상황에서도 헤쳐 나가고 있죠. 그렇다고 생각해요. 은숙이 말고도 좋은 사람들 참 많아요. 아까도 말했던 것처럼 송전탑 싸움 하면서 좋은 사람들 참 많이 만났거든요.

 

: 그럼 박은숙 님 말고 의지하는 사람이 또 있으세요?

 

: 홍정수 신부님이랑 감병만 국장님도 있고. 또 연대자들도 있고. 그러고 보니 참 많네요. 하하하

 

: ‘힐링캠프같이 갔던 마음복지관의 홍정수 신부님이요?

 

: 네 맞아요. 송전탑 싸움을 하면서 가장 힘들 때 알게 된 인연이에요. 지금은 휴가 중이라서 못 오지만 그 전에도 3주에 한 번 씩 명상이나 상담하러 오셨잖아요? 올 때마다 항상 우리 집에서 머물렀어요. 지금은 2층에 연대자들 자라고 황토방을 올렸지만, 예전에는 그것도 없었거든요. 그땐 그냥 우리 생활하는 1층에서 같이 주무셨어요. 우리 부부는 안방 쓰고, 신부님은 그 옆방에서 주무시고. 그렇게 알게 된 게 벌써 3년이 되네요.

 

: 아 제가 이곳에 오기 훨씬 전부터 알고 계신 거네요? 3년이나 됐으면, 큰 힘이 됐겠어요. 힘들도 지칠 때마다.

 

: 많이 의지가 되죠. 밀양에 오실 때마다 함께 명상도 하고 상담도 하고 또 고민이 되는 게 있으면 이야기도 나누고. 어떨 때는 전화로 내 힘든 거 말하면서 울기도 해요. 그렇게 하고 나면 좀 풀리죠. 마음도 건강해지는 것 같고. 혼자 있으면 안 좋은 생각만 하게 되니까. 송전탑, 찬성한 주민... 골치도 아픈데 그럴 때마다 의지가 되는 사람이죠.

 

: 뭔가 홍정수 신부님이 어머니의 마음을 지켜주는 분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박은숙 어머니 같은 경우는 곁을 지켜주면서 의지도 되고 같이 웃기도 하고요.

 

: 그렇죠. 또 있어요. 저 뿐만 아니라 우리 동화전의 건강을 지켜주시는 분도 있어요. 감병만 국장님이라고.

 

: ~ 마창진 환경운동연합의 전 국장님 맞죠? 최근에는 동화전마을에서 몸살림도 함께 하시는 분 맞죠?

 

: 맞아요. 감 국장님도 우리 동화전마을에 오래 전부터 힘을 주신 분이에요. 몇 년 전 송전탑 싸움을 하면서도 감 국장님이 와서 몸살림이라는 것을 해줬어요. 우리 몸이 건강해야 잘 싸울 수 있다고 하면서.

 

: 근데 몸살림이 뭐예요? 저도 같이 하려고 했는데 기회가 안 돼서 전 아직 보지도 못했네요.

 

: 그냥 쉽게 말하면 일종의 자세도 바로잡아주고 교정도 해주는 거예요. 처음에는 내가 몸이 안 좋아서 개인적으로 감 국장님이 와서 해줬거든요. 근데 그 자리에 우리 동네 할머니들까지 부르게 되면서 크게 된 거죠. 그때도 감 국장님은 항상 와서 저희 몸도 봐주고, 틀어진 부분이나 안 좋은 부분이 있으면 교정 같은 것도 해주고. 또 혼자만 온 것이 아니라 후배들도 여러분 같이 와서 할머니들을 일대일로 다 해줬어요. 얼마나 고마웠는데. 다들 평생 농사를 지으셔서 몸이 성치 않은데. 또 송전탑싸움하면서는 경찰이나 한전이랑 몸싸움을 하니까 성할 날이 없었죠. 근데 그렇게 몸살림을 하면서 다들 몸도 좋아지고 위로도 많이 받고. 그렇게 버텨나간 거죠. 저도 그렇고 우리 마을도 그렇고.

 

: 감 국장님과도 오래전부터 그런 인연이 있었네요. 근데 몸살림이라는 거 진짜 좋은 것 같아요. 건강도 지키고 또 함께 그렇게 모여서 하니까 마을 사람 끼리 돈독해지기도 하고요.

 

: 맞아요. 몸살림 하고 나서 다 같이 점심을 먹고 헤어지는데. 그 밥 한 끼가 굉장히 소중하더라고요. 물론 몸살림 그 자체도 좋지만 그것보다 밥 한 끼 먹으면서 이야기도 나누고 웃으니까 그게 더 좋더라고요. 일주일에 한 번 만나서 웃고 얘기하고. 사실 한 마을에 살면서도 서로 농사짓기 바쁘니깐 이렇게 모을 기회가 없으면 또 모이기도 힘들어요. 근데 몸살림을 다시 시작하면서 이렇게 모이게 된 거죠. 또 모이면 이야기도 하면서 서로 웃고.

 

이야기를 듣다 보니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참 많이 나왔습니다. 고마운 사람, 의지가 되는 사람, 내 곁을 지켜주는 사람... 몸을 건강하게 지켜주고, 마음을 지켜주고, 곁을 지켜주는 사람. 힘든 싸움을 하면서도 그렇게 좋은 사람을 만나게 된 것이 참으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음이 무너지지 않도록 옆에서 의지가 되는 사람이 있으니까요. 그런 그녀에게 물었습니다. 이 힘든 싸움을 포기하지 않고 온 원동력이 무엇인지.

 

: 물론 사람이죠, 사람. 은숙이를 포함해서 우리 동화전 주민들도 참 고맙고, 신부님이랑 감 국장님도 고맙죠. 전 정말로 데모를 잘했다고 생각해요. 내가 데모 안 했으면 이렇게 고마운 사람 못 만났을 거잖아요. 근데 우리에겐 숙제가 있어요.

 

: 숙제요?

 

: 비록 송전탑은 다 섰지만 숙제가 있어요. 전기를 안 흐르게 만드는 거죠. 우린 끝까지 싸울 거예요. 우리를 응원해주는 연대자들을 위해서 송전탑 뽑을 때까지 싸워야죠. 또 정부가 잘못된 행동을 하니까 이렇게 막는 거고, 끝까지 할 겁니다.

 

2시간이 훌쩍 지나갔습니다. 때로는 함께 글썽이다가 함께 웃고. 그렇게 시간이 지나갔습니다. 그래도 다 하지 못한 이야기가 많아 보였습니다. 더 듣고 싶은 것도 묻고 싶은 것도 많았지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지 물어보았습니다.

 

: 더 하고 싶은 이야기요? 많죠. 근데 딱 하나만 꼽으면 갈수록 데모가 힘들다는 거예요. 대책위도 그럴 것 같아요. 맞죠? 힘들죠?

 

: (뭔가를 들킨 것 같아 민망해 하며하하하

 

: 예전에는 그냥 송전탑 공사를 막으면 됐는데. 물론 하루하루 싸우는 게 참 힘들고 고역이었지만. 그땐 그 하루 열심히 싸우면 됐거든요. 근데 지금은 송전탑 공사도 다 끝이 났고, 전기도 조금씩 흐른다고 하니까. 이제는 뭘 어떻게 해야 할 지가 참 어렵게 됐어요. 합의한 사람들이 하도 말들을 많이 하니까 흔들리는 할머니들도 많고. 그분들이 떨어지지 않도록 우리가 단디(세게) 잡아야 하는데. 근데 그게 잘 안 보이니까. 또 연대자도 뜸해지고 있고. 제일 두려운 건 우리 밀양의 이야기가 묻히는 거죠. 관심이 사그라지는 게 느껴지기도 하고. 어느 순간 모든 사람들이 밀양을 잊진 않을까 무섭고 겁이 나죠. 그렇게 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이야기를 듣는 내내 울컥했고 또 크게 웃었습니다. 그러다 다시 가슴이 아팠습니다. 누군가의 기억에서 잊히는 것만큼 무섭고 두려운 것은 없을 겁니다. 그러나 밀양 주민들이 다시 힘을 얻고 저 송전탑을 뽑아내게 만드는 것도 사람의 힘인 것 같습니다. 누군가의 상처와 아픔에 공감하고 그것을 기꺼이 함께 나누는 당신의 손이 필요합니다. 밀양의 손을 잡고 굳게 닫힌 창문을 열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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